사물을 바라보거나
사물을 바라보거나 소리를 듣는 감각적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작품의 창작을 고무시키는 동기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러므로 단순한 손가락 운동뿐 아니라 그리려 하는 의지와 그것을 형상화하려는 미의식이 전제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풍경이 제각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풍경이 여러가지 모습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풍경은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며 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세계가 된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형태와 색깔로 캔버스 위에 재창조된다.
현실로 존재하는 자연과 캔버스 위에 그려진 자연은 물론 다르다. 그것은 풍경과 사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예술적 이념적 해석이요 자신의 삶의 방법의 한 형태이다.
샤를르 바또에 의하면, 예술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이며 그 제일의 목적은 쾌락에 있다고 했다. 자연은 아주 단순하며 단조로운 쾌감밖에 없기 때문에 미술가는 거기에 쾌락을 적당하게, 사정에 따라 정신을 불어 넣으면서 새로운 예술적 질서를 창조한다. 이때의 예술가의 노력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선택하고 그것을 보다 흘륭하게, 자연 그 자체보다 더 완벽하게, 더욱 자연스러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지만 그것을 복사하지는 않는다. 미술은 자연을 모방하되 사물과 대상을 선택한다. 여기서의 선택이란 대상의 나열이 아니라 화가의 미의식의 표출방식이다. '있는 것'보다는 '있어야 할 것', '특이한 하나'보다는 '범상하고 오랜 것' 이른바 존재보다는 당위에, 특수보다는 보편, 영원에 모방의 본질이 있다.
모방은 그러므로 베끼기가 아니라 창조의 정신이다.



